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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죽음, 그리고 부검이 필요한 이유


토종 돌고래 상괭이 부검 현장

반려동물을 진료하다가 해양생물로 분야를 옮기고 나서 제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부검입니다. 부검은 야생 고래 관련해 수의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전문적인 분야인데요. 저는 야생에서 죽은 채 발견되거나 구조 후 치료 중 죽은 개체에 대한 부검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해 우선 알려드리고 싶어요.


죽은 고래의 외관과 내부 장기까지 모든 부분을 들여다보고 병리학적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야생 동물의 경우 추가로 종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생태학적 실마리를 풀기 위한 검사도 진행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깊은 바다 속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인간이 자연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알 수 있게 되죠.


야생 고래를 부검하는 대략의 순서와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체 평가하기

죽은 사체를 부검하기 전 안구와 체공(분기공, 생식공, 항문 등)의 상태를 보고 분비물이나 손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피부색의 변화와 부패 정도를 기록합니다. 또 ‘측정’을 하죠. 측정값 만으로 그 동물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합니다. 전체 몸길이부터 이빨 개수, 눈과 귀 거리나 등과 배의 지방의 두께까지. 꼼꼼하게 할 경우 30분 이상이 소요되고 최소 3명 이상이 필요합니다. 이는 개체의 빅데이터가 쌓이는데 도움을 주며 추후 환경 등 요인에 따라 종의 특징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됩니다.


가장 바깥 층부터 부검 시작하기

본격적인 부검은 사체의 가장 바깥 층을 분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고래는 아주 얇은 피부 아래 ‘블러버’라 불리는 두꺼운 지방층이 있는데요. 이는 5천만년전 육지에서 살다 바다로 들어가며 수렴 진화한 결과입니다. 열전도율이 높은 바다에서 살아야 하는 고래에게 단열재가 되어 주며 잉여 영양분을 블러버에 축적하죠. 그래서 북극에 사는 벨루가흰고래의 지방층은 20센티미터가 넘는 반면 따뜻한 지역의 돌고래들은 1센티미터도 안되는 지방층을 갖고 있습니다. 부검 첫번째 단계에서 이 지방층에 기생충의 알이 있는지, 혹은 살아 있을 때 외부 충격에 의한 출혈이 있는지 등을 살핍니다.



토종 돌고래 상괭이 부검 전 모습

순서대로 내부 장기 살펴 보기

근육과 갈비뼈에 외상이나 골절이 있는지를 살피며 하나씩 제거하면 흉강이 노출되는데요. 기관, 식도, 폐, 심장, 횡격막의 위치와 색을 살피고 염증이나 종양 등의 이상이 의심되면 임파절과 조직을 샘플링합니다. 이어 복강이 노출되면 간, 위, 장 등의 이상을 살핀 후 장기를 분리해 측정하고 세밀히 관찰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바로 ‘위’입니다. 대부분의 고래는 3개의 위를 가졌다고 지난 번 글에서도 말씀 드렸는데요. 1위는 식도의 연장부분으로 보며 화학적 소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다. 2위는 진위로 비로소 소화다운 소화가 일어나는 곳이구요. 소화 효소가 없는 1위는 그래서 매우 중요합니다. 위 전체가 비워지는 4시간 이내에 뭘 먹었는지, 또 각 고래종이 속한 먹이 사슬은 어떠한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위 안의 먹이 생물은 그 형태로 또는 DNA 분석으로 규명합니다. 물론 먹이생물이 위 안에 없어도 지방층의 동위원소 분석으로도 먹이생태 연구는 가능합니다. ‘위’와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장기 중 하나인 생식기도 관찰합니다. 임신 여부 확인부터 난소와 정소 등의 상태를 보고 성성숙도와 생애주기 등을 파악하게 됩니다.


심화 검사 하기

내부 장기를 모두 관찰한 후에는 조직병리 검사가 필요한 경우 심화검사를 진행하고 혈액 등 체액으로 세포학적 검사도 실시합니다. 마지막으로 두개골을 열고 뇌의 병변까지 확인합니다. 연령사정을 위해 손상이 적은 이빨 3-5개를 샘플링하고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 미세플라스틱 등 해양 오염물질 축적 검사를 위하여 주요 장기와 근육, 지방등을 샘플링하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사진을 찍어 기록해둡니다. 당시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실마리를 나중에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부검은 이처럼 각 종이 처한 위험의 원인을 알 수가 있고 그 개체가 누구인지 어떤 히스토리가 있는지를 알게 합니다. 그래서 야생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개체는 가급적 모두 부검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인프라가 만족스럽지 않은 실정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죽은 채 해안가로 밀려온 고래에 대해 글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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